#1 시대를 앞서간 드라마

‘롱배케이션’은 1996년 일본에서 방영된 드라마로 '롱바케 신드롬'이라는 사회 현상을 일으킬 정도로 큰 히트를 기록하였다. 지금보아도 정말 세련되고 재미있고, 1996년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줄거리부터 각 등장인물들의 특성까지 올드함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다.
여자주인공 ‘미나미’는 31세 여성으로 결혼식장에 신랑이 나타나지 않는 큰 사건을 겪은 뒤 그가 살던 집을 추적해 그의 이전 룸메이트이자 남자주인공 ‘세나’를 만나게 되고, 결혼 준비 비용으로 전 재산을 다 써 집을 구할 돈이 없다며, 그 곳에서 세나와 함께 지내게 된다. 결혼에 실패하고 본업인 모델 일을 지속하기에는 나이가 많아져버린 미나미, 피아니스트를 지망하나 이렇다 할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세나가, 남자가 7살이 어린 적잖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커플이 되어 결혼에도 골인하고 세나는 피아니스트로서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는 꽉 막힌 해피엔딩의 결말이다.
이 드라마는 여러 면에서 그 이후 방영된 한국 드라마들을 연상케 한다.
#2 떠오르는 한국 드라마들
1. 트렌디 드라마: 미스터큐, 토마토
‘미나미’는 정말 매력 있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일본 여성 특유의 콧소리나 조심스러움이 가득한 말투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목소리도 크고 행동도 당차며 할 말은 늘 시원시원하게 하는 인물이다. 남주인공 ‘세나’ 역할을 맡은 기무라 타쿠야의 인기야 말할 것도 없지만, 당시 ‘미나미’ 역할을 맡은 배우 야마구치 토모코의 인기는 신드롬 적이었다고 한다. 기무라 타쿠야가 드라마 촬영 중 야마구치 토모코에게 진심으로 반했었다는 일화도 있다.
매력적인 미나미와 세나, 그들이 함께 사는 낭만적인 공간, 세련된 OST를 들으며, 1990년대 후반 한 세대를 풍미했던 아이콘 김희선이 등장했던 우리나라의 트렌디 드라마, 미스터Q와 토마토가 떠올랐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김영찬 교수의 정의에 따르면, 트렌디 드라마는 신세대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드라마로 젊고 매력적인 남녀 주인공의 등장, 그리고 그에 따른 세대 간/가족 간 갈등의 배제 내지 주변부화, 경쾌하고 호소력 있는 배경 음악, 화려한 소품과 미장센, 이국적인 로케이션, 갈등은 있으되 무겁지 않고 빠른 이야기 전개와 행복한 결말 등을 특징으로 한다. ‘롱베케이션’은 언급된 요소에 해당하는 특징들을 전부 갖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미스터Q와 토마토 역시 위 특징들을 상당 부분 충족시키며 당시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김희선은 능력 있는 악역으로 등장한 송윤아와 김지영에게 때론 밀리면서도 당차게 자기주장을 펼치며 극을 이끌었고, 곱창머리끈과 헤어밴드, 장난감 요요 등 온갖 것들을 유행시키기까지 했다.
2. 내 이름은 김삼순
‘미나미’가 결혼에 실패하여 적령기를 놓친 여성으로 나오면서 사실 가장 먼저 떠오른 드라마는 2005년에 방영된 ‘내 이름은 김삼순’이다. 김삼순 역시 30세가 넘도록 결혼을 하지 못하여 노처녀 신세를 면치 못하는 와중에 연하남 현빈을 만나게 된다. 동일한 세팅이 일본에서는 벌써 9년 전에 다뤄졌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3. 그 외: 옥탑방 고양이, 커피프린스 1호점
혼전동거를 소재로 하였다는 점에서, 이 소재가 처음 우리 안방극장에 등장한 2003년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를 떠올리게 하였다. 또 남주인공 세나가 피아니스트를 지망하는, 전통적인 남성성을 벗어던지고 다소 유약하며 섬세한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커피를 만드는 섬세한 남자들이 많이 등장하는 2007년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을 상기시켰다.
#3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재미있는 드라마
'롱베케이션'은 눈을 즐겁게 하는 등장인물들의 패션과 미장센, 귀를 즐겁게 하는 세련된 OST, 집중력을 잃지 않게 하는 빠른 전개, 도드라지는 악역이나 인물간의 갈등이 없어서 심적 부담 없이 볼 수 있다는 점, 또 해외 현지 로케 생방송으로 진행되었다는 마지막 장면까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즐길 수 있는 요소들이 많은 일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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