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국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한국 원작 드라마

영어 제목이라 헛갈릴 수도 있지만, 미국에서 판권을 사들여 리메이크 한 한국 드라마 원작 작품이다. 우리나라 판은 주원이 주연을 맡았다. 미국 ABC 방송에서 2017년 9월 시즌 1을 시작으로 부지런히 새로운 시즌이 방영된 가운데 2023년 4월 무려 시즌 7의 제작이 발표되었다. 나는 한국 원작은 시청하지 않았다.
시즌 1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넷플릭스에 업로드 된 마지막 시즌인 시즌 5를 마치려는 참이다.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에 빠진 이유를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대학병원 외과 레지던트로 입사, 동료들과 함께 환자를 치료하며 자폐 증상을 넘어서 한 명의 훌륭한 의사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는 점, 주인공의 성장 과정 결정적 역할과 소속감을 제공하는 따뜻한 주변 인물들이 존재한다는 점, 그리고 이를 통하여 현재 미국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성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2 성장드라마
1. 성장물에 대한 관심
중, 고등학생 시절 일본 발 시뮬레이션 게임이 한창 유행하였다. 건설, 경영, 육성, 연애 등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것들을 컴퓨터를 통하여 체험해보게 하는 시뮬레이션 게임 장르에서 내가 가장 좋아한 것은 육성 시뮬레이션이었다. 그 대표 주자는 두말할 것 없이 ‘프린세스메이커’ 시리즈였다.

딸에게 어떤 공부, 어떤 아르바이트를 시키고, 어떤 경험을 하게 하는지에 따라 딸은 각기 다른 능력치를 증가시킬 수 있었고, 그 능력치들의 총합으로 딸의 직업과 미래가 결정되었다. 성장하고 변화하는 딸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아주 흥미로웠다.
게임 뿐 아니라 영화나 티브이 드라마를 선택함에 있어서도 주인공이 성장하는 과정이 전면에 떠오르는 작품을 좋아하였고, 성장의 정도가 커서 극의 초반과 후반의 주인공의 능력치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희열을 느꼈다. 이 방면에서 좋아하는 작품으로는 안젤리나 졸리가 ‘폭스’ 역으로 열연한 ‘원티드’, 비슷한 구성을 가진 ‘킹스맨’이 있다.


별 볼일 없는 회사원, 혹은 그에도 못 미치는 동네 양아치가 완벽한 멘토를 만나 혹독한 훈련 과정을 거쳐 세계를 구할 영웅으로 거듭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연의 인간적인 매력을 잃지 않는다는 뻔 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다시금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도파민을 불러일으킨다.
2. ‘굿 닥터’에서의 성장
굿 닥터의 주인공 ‘숀 머피’는 별 볼일 없거나 무능한 정도를 한참이나 벗어났다. 오히려 그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로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거나, 동시에 가지고 있는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지능이나 기억력의 면에서 아주 유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장애로 인해 사회적 소통능력이 현저히 결여되어 있고, 수술을 전문으로 하며, 다른 수술진들 혹은 환자와의 소통을 외과 의사를 희망하는 그에게 이는 엄청난 취약점이다.
다행히 그에게도 대학병원의 원장인 멘토가 존재하여, 그가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어린 시절부터 그의 뒤를 보아주어 계속 공부할 수 있게 하며,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의 외과 레지던트로의 채용까지 도와준다.
잠깐 외과 레지던트에 대해 알아보자. 미국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하면 어느 한 의학 분과에 특화된 전문의가 되기 전에 그와 같은 전문의들로부터 교육을 받으며 환자를 볼 수 있는 레지던트 의사로서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숀 머피’는 사람의 몸을 열고 수술을 하며, 그만큼 환자의 생명에 치명적인 상황을 많이 맞닥뜨리게 되는 외과 레지던트로 채용이 되었다. 이에는 급박한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는 침착함, 타 수술진들과 원활히 소통하며 협력할 것, 그리고 수술의 전이나 후에 환자와의 원활한 소통 능력이 필수적인 것이다.
그래서 숀을 외과 레지던트로 채용하고자 하는 숀의 멘토이자 병원장의 독단에 여러 사람들이 반기를 든다. 심지어는 채용이 되어 한참을 일 한 후에도, 숀의 소통능력의 부족을 문제 삼은 상사가 숀을 환자를 직접 진료하지 않고 연구실에서만 업무를 하는 병리과로 일방적으로 전배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초기, 숀에 대하여 누구보다 강한 반감을 가졌지만 어느새 숀의 능력을 인정하게 된 다른 상사의 희생으로 숀이 외과로 되돌아오게 된다.
환자를 대할 때, 또 수술실에서 숀을 응원하는 나를 아찔하게 하는 순간들이 지속적으로 찾아왔다. 하지만 숀은 완벽하기만 한 멘토의 도움을 일방적으로 받지도 않고,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고 인내해가면서 급속성장하지도 않는다. 숀의 멘토는 갑자기 뇌종양 판정을 받고는 치료를 거부하며 여기저기 성질만 내고 다니며 보는 이를 한껏 답답하게 할 정도로 인간적인 캐릭터이며, 오히려 치료 과정에서 숀의 엄청난 지지와 도움을 받는다. 또한 숀은 자신의 감정에 지극히 솔직하기 때문에 미래를 위해 현재 가질 수 있는 행복을 포기하지도 않는다. 숀의 성장은 자연스럽고, 지속가능하며, 보는 이를 조급하게도, 불편하게도 하지 않는다.
#3 주변인들

사실 숀의 성장은 두 부분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는 외과의사로서의 성장, 다른 하나는 장애가 주는 한계를 넘어서 소통능력을 가진 개인으로서의 성장이다. 그리고 두 부분 모두 숀의 주변에 있는 천사 같은 인물들 덕에 가능하다.
장애로 부모에게서도 버림받고, 소통능력의 부재로 친구 하나 없던 숀은 결국 가족, 친구, 애인 모두를 병원에서 얻게 된다. 수술 중에 숱하게 지극히 사적인 경험인 ‘섹스’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며 동료들을 놀라게 하지만, 그들은 숀을 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숀이라는 사람을 이해하고 숀의 눈높이에서 답을 해주고 한결같은 지지를 보낸다.
숀의 주변인들은 이렇듯 장애로 인해 남들과는 다른 특성을 가진 숀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아낌없이 할 수 있을 만큼 아량이 넓다. 그 이유는 그들이 날 때부터 천사의 심성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각기 다른 소수자로서의 특성과 다수로부터의 차별, 소외의 경험을 가지고 있고, 그로인해 아파해본 적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리라.
숀의 멘토가 백인 남성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주요 인물들은 아시아계 혹은 아프리카계이거나 성소수자이고, 그들이 그러한 출신 혹은 특성으로 인하여 분투하며 살아왔다는 사실에 대해서 거리낌 없이 이야기한다. 백인 여성일지라도 자신의 가족구성원들로부터 심각한 소외를 경험한 자로서 등장하고, 숀의 멘토도 백인 여성과 결혼하여 번듯한 가정을 꾸리고 애 키우며 사는 자가 아니라, 딸의 자살로 인해 가족이 파탄 나고 그에 대한 죄책감을 평생 안고 살아가는 자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상처에 빠져 자기연민이나 하고, 자신과는 차마 비교할 수도 없이 사회생활에 어려운 특성을 가진 숀을 동정하고 호의를 시혜하며 만족감이나 축내는 자들이 아니다. 자신이 보낸 힘든 시간은 겸허히 인정하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는 자들이고, 그 과정에서 숀이 뒤쳐진 게 보이면 끌어와 같은 선상에서 함께 성장하고자 하는 이들이다.
이런 이상적인 공동체 안에서 내가 보아온 5개의 시즌 하에 점진적인, 그러나 분명한 성장을 이루어가는 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너무나 대견한 마음이 들었고, 동시에 나에게도 저렇게 강력한 소속감을 제공하는 선한 조직이 있다면 좋겠다는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4 미국 사회의 다양성
주요 등장인물 중, 성이 ‘박’씨인, 경찰을 15년간 하다 와 나이가 아주 많은 숀의 레지던트 동기가 있는데, 성에서 느껴지듯 한국계 인물이다. 그 아버지가 이민 와서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셨던 자로, 그래서 무술에 능하고 체격이 좋아 외모가 아주 출중하다.
그 뿐만 아니라 원작 국가를 의식한 듯 환자들도 아시아인은 물론이고 한국인들이 한 번씩 등장하는데,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하여 증오 범죄의 피해자가 된 ‘송’씨 역시 그를 한국말인 ‘아빠’라고 부르는 딸과 함께 등장한다. 이렇게 인종적 다양성에서 나아가 인종 내 국가, 민족적 다양성까지 상세히 다룰 정도로 이 드라마가 미국 사회를 구성하는 이들의 다양성에 대해서 고려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으며, 시청자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어 계속해서 새로운 시즌을 제작하고 있다는 사실이 꽤나 놀라웠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우리 모두는 약점은 숨기고 강점은 부풀리며 살아갈 것을 권유받는다. 각자의 약점을 겸허히 내보이고 함께 도와 성장하며 나아갈 때 훨씬 더 살만한 세상이 될 수 있음을 이 드라마를 통해 엿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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