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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주류 가게의 아메리칸 드림(Liquor Store Babies)’ 부산국제영화제 관람 후기

con-reviewer 2023. 6. 17. 12:12

#1 기본 정보

‘LA 주류 가게의 아메리칸 드림(Liquor Store Babies)’는 한국계 미국인 엄소연 감독의 2022년 작 다큐멘터리 영화 작품으로 국내외 다수 영화제에서 상영 및 수상하였다. 이 영화는 미국 LA에 있는 리큐르 스토어(Liquor Store), 영화 제목에 등장하듯 주류 가게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는 20대 여성 감독과 그의 가족, 그리고 그의 친구 가족을 소재로 하여 촬영된 자전적 작품이다.
 

#2 어떤 영화인가

우선 미국 내 주류 가게라 함은 우리나라의 주류 가게 브랜드 중 잘 알려진 가자주류백화점처럼 주류를 전문으로 판매하는 곳으로, 과거 우리나라 이민자들이 미국 이민을 가서 정착 및 생계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많이 운영하여왔다고 한다. 영화의 영어제목 리큐르 스토어 베이비에서 나타나듯, 감독은, 부모님이 리큐르 스토어를 운영하는 중 나고 자란 아이로서 미국 이민 2세대이다.

미국 이민을 간 한국인에 관련하여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영화는 ‘미나리’가 있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고 최진실 배우가 주연한 1991년 작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도 있다. 이 영화는 유럽에 입양된 한국인에 관한 것이다. 이민자 혹은 입양아로서 다른 사회에 속하게 된 자가 정착과 관련한 애환 혹은 이방인으로서 겪는 혼란과 자신의 뿌리를 지키고자 하는 싸움에 대해 그린 영화는 있어왔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에서 나아가 부모와의 세대 갈등, 인종 갈등, 그리고 코로나로 인한 지역 공동체의 붕괴와 이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을 다룬다는 점에서 한 차원 진보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3 이 영화만이 갖는 매력

1. 자전적 다큐

몇 년에 걸쳐 촬영되었을지 가늠하기도 힘들 정도로 감독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이 영화를 촬영해온 듯하다. 주인공의 헤어스타일이 여러 모양으로 바뀌는 것을 보면 참 재미있는데, 고가의 영화 촬영용 카메라를 사 처음으로 개시하는 듯 아버지에게 조심히 다룰 것을 당부하는 모습도 아주 귀엽다.

사실 자기 자신, 가족, 주변 사람들과 그 삶을 여과 없이 촬영해 화면 밖으로 내보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감독은 아주 용기 있게 주류 가게 딸이자 이민자 2세로 자란 자신의 삶, 그리고 주요 등장인물인 아빠와의 갈등을 아주 솔직하게 담아냈다. 두 사람이 한국인 대 흑인과 관련한 인종 갈등에 부딪힐 때에는 저러다 누가 손에 닿는 물건 집어던지기라도 하는 거 아닌가 하고 아주 조마조마한 마음의 관객이 된다. 딸과 아빠는 다른 세대를 살고, 다른 경험을 하면서, 다른 신념을 구축하게 되었다. 퍽 사이 좋아 보이는 감독 부녀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두 사람의 세대 간 갈등이, 그들을 둘러싼 사회 변화의 모습에 따른 인종 문제에 대한 시각 차이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연출이 좋았다.

감독의 소꿉친구이자, 동일하게 주류 가게를 운영하는 한국계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대니’의 이야기를 담는 모습도 인상 깊었다. 대니의 어머니는 주류 가게를 운영하게 된 계기와 관련하여 개인적으로는 정말 감추고 싶었을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풀어놓는데, 오랜 세월 보아 온 ‘아들의 친구’인 감독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없이는 만들어지기 힘든 장면이었으리라 생각된다.
 

2. 많은 것을 다루었고, 관객으로서는 이민자로서의 삶의 다양한 면을 엿볼 수 있다.

전술했듯 이 영화는 기존 입양아, 이민자에 관한 영화와는 달리, 다른 사회에 편입되어 살아가는 자의 고충에서 나아가, 그러한 고충에 대해 부모세대와 자녀세대가 대응하는 방식의 차이, 그들 간의 갈등을 효과적으로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 내에 있었던 2020년 흑인 차별 반대 시위를 언급하고 90년대 LA 폭동을 상기하며 인종 갈등 문제를 다루기도 하고, 코로나로 인한 지역 공동체의 붕괴와 이를 되살리기 위한 노력도 그려내 보인다.

현대를 살아가는 20대 이민자 출신 여성의 눈에 비친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단순히 헬조선을 벗어난 운 좋은, 날 때부터 영어를 잘 해 평생 영어 걱정이라곤 없는 재미 교포 젊은이의 삶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많은 것이 있음을 체감하게 해 준다.
 

#4 무대인사 후기

감독과 아버지, 사이좋게 함께 무대에 올랐지만 각자에게 편한 인사말은 영어와 한국어로, 달랐다. 하지만 관객의 질문에 함께 답변을 해 나가며, 때로는 서로 귀엽게 핀잔을 주며 하던 말을 마무리 짓게 하는 모습이 사이좋은, 아마도 이 영화 촬영을 통해 더욱 사이가 좋아졌을 법 한 부녀의 모습을 내보이게 하였다.

마무리 인사를 대신하여 아버지가 말하였다. 딸이 학교를 졸업하고 10년이 넘도록 분명한 성과 없이 힘들게 지내고 있으니 자격증 취득을 위해 학교로 다시 돌아갈 것을 권하였다고. 그런데 딸아이가 울면서 그랬더랬다. '아빠, 나 너무 멀리 와서 돌아갈 수가 없어.' 그랬던 딸이 만든 영화 덕분에 지금은 아빠가 뉴욕, 밴쿠버, 그리고 수십 년 전 희망을 찾지 못해 떠나왔던 고국 땅에서까지 주인공의 자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며 아주 자랑스러워하였다.

관객들의 많은 관심과 연이은 질문으로 모든 질문에 다 답하지 못한 채 상영관을 빠져나가면서 감독은 추가 질문은 SNS로 달라며, ‘DM me’라고 다급하게 말하였다. 자신의 삶을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해 낸 젊은 감독의 다음 행보가 몹시 기대된다.